불멸

2020. 9. 1. 15:52

이루지 못함을 안다. 너에 대한 破滅 나의 대한 赴古 사람의 대한 亡生이 아니아길, 태초부터 으로 비롯되어 있어야 할 삶의 재촉. 파라난의 길을 찾아 헤매이다가 울지 못함으로 버티고 살고. 이미 죽어있는 사람을 왜 살려. 앞으로의 길을 알지 못함을 안다. 初年 시절도 없지 아니아길. 영생을 바라지 않는다. 겨울밤에 나는 걸음을 찾는다. 앞으로 찾지 못한다. 나는 찾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찾지 못하는 것을 알아서 더욱 찾지 못한다. 미련은 태초부터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이미 바닥에 그친 사람이라. 찾을 수가 없음을 알아라. 파라난이다. 피의 파라난, 피의 말련이다. 말련의 길을 알아라. 울피우는 나는 오늘도 살지 못한다. 사람을 찾는다, 굳이 찾지는 않아도 됨이었다. 지난 여름날 매섭게 울던 매미처럼 그렇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길을 찾았다. 매섭게 떨어지지 못하여. 사람 하나를 찾아 해매었다. 마치, 그 시절에 울지 못하는 아이처럼 서럽게. 눈물을 흘릴 수가 없다. 나는 울 수가 없다. 울려고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눈물은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때의 그 순간에 뭐든 것이 멈춘 것만 같다. 뭐든 것이 멈추어서 눈물조차도 멈추워버린 것만 같다. 길이 없다고 해도 나는 향한다.

저기 선생님, 그쪽으로 가면 길이 없어요.

알아 그 정도는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냐고. 따질 상황도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눈물이 치닥는다. 그토록 쥐어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이제서야 치닫는다. 자살이요, 이 삶은 죽음이요. 이 삶은 파멸이요. 나는 영생을 하지 못하요. 육도윤회의 영생을 거듭해서 사람으로 태어나도 이렇게 살진 말아야 할 것을 살아버린 것임을 안다.

쓸데 없이 너무 오래 살았다. 이미 진작에 뒤졌어야 했다. 유서가 무슨 소용이야. 이 영말이 무슨 소용인데. 증오도 더는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증오도 기력이 있어야 함을 안다. 지쳤던 것이다. 복수도 그리고 그 증오도 뭐든 것에 대하여 추락으로 끝을 맺을 것만 같던 시절을 안다. 굳이 또 살려서 나를 죽게 만들어, 최성욱 나는 두 번 죽은 사람이다. 아니다 세 번을 죽었다. 첫 번째는 5살의 20년 전 그 날에 난 모와 누이와 함께 이미 죽은 것이다. 이미 죽었다. 이미 눈을 감고 처죽임을 당했다. 두 번째 죽음은 나 자신이 나를 죽였다. 내가 나를 죽인다. 나는 오늘도 살인을 행한다. 그때의 기록도 지금의 기록도 소용 없음을 아는 이 살인자는 나는. 어쩔 길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다. 하루가 지난다. 한 달이 지난다. 봄과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지난다. 사 계절이 지난다. 네가 왔다. 또 다른 나를 죽이는 네가. 네가 찾아온 것이다. 네가 마지막의 나를 죽일 것이고 장식한다. 그토록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한 사람이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것은 모, 누이, 부 뿐이었음을. 그 사람들은 나의 첫번째와 함께 장식을 했다. 장식하지 않을려고 해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임을.
죽음을 마멸한다.

화성이오, 윤옥이요. 태왕이요. 강령이요. 민휘, 그가 오고나서 사람의 쉰 냄새와 달리하던 것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살맛이 났다. 이미 죽은 새끼가 살맛이 나봤자 얼마나 나겠다고 하겠지만 살맛이 조금 아주 단지 조금. 하지만 그것도 잠시지. 나는 결국 마지막은 너에게 죽임을 당함을 알고 짐작했다.
나를 죽여줘, 휘야. 마지막은 네가 해줘.
그 울음 소리를 기억한다, 태초된 울음이다. 광명이다. 나는 영원히 죽었으므로.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드리지 않는다. 죽음을 안다. 기억한다. 외면하고 외면해서 이 삶에서 나는 죽음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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